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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칼럼 2017-08-24T14:04:31+00:00

원장님 칼럼

아파야 산다.

작성자
성로요양병원
작성일
2018-07-11 11:53
조회
140
아파야 산다

滄 巖 김 석 대

제목을 써놓고 보니 이상하다. 우리말인데 우리말 같지 않다. 마치 인도 말 같기도 한 것이 무슨 불경같기도 하고 주문같기도 하다. 아픈 것 보다는 안 아픈 게 좋고, 아프지 않아야 건강하게 오래 살 것 같은데, 아파야 산다니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인가. 그래서 낯설게 들리는 모양이다.
흔하지 않은 신경계 질환 중에 선천적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있다. “선천적 무통증”(Congenital Painless Syndrome) 이라는 상태인데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다. 최근 어느 재벌을 통해 알려진 샤코마리투스병(Charcot-Marie-Tooth disease)에서도 일부 감각장애가 있어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는 부분적인 무감각증이고,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선천적 무통증과는 다르다. 살아가면서 아픔을 모른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있으랴마는, 실상은 축복과는 매우 거리가 먼 심각한 질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태어나면서부터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무통증 아이들은 혀를 씹어서 혀가 헐고 퉁퉁 붓는 현상으로 발견된다. 생후 육개월 쯤에 이가 나기시작하면 입안에 고깃덩이같은 것이 있어서 자주 씹는다. 우리가 음식을 씹어 삼키는 과정은 음식과 혀가 마구 뒤섞여 돌아가는 복잡한 혼란중에 혀는 건드리지않고 음식만 골라서 씹는 대단한 묘기를 연출하는 과정이고, 이 묘기는 몇 번 혀를 씹으면서 터득하게 된다. 그런데 씹어도 아프지 않으니 음식만 골라 씹는 묘기를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다. 자라면서 매일 뜨거운 것, 높은 곳, 뾰족한 것, 무거운 것, 등 우리를 다치게 하는 위험이 사방에 깔렸는데, 부상을 당하기 전에 “아픔”이라는 경고신호가 먼저 와서 우리는 위험으로부터 피하게 된다. 그러나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하면 부상의 위험에서 피하지 못한다. 뜨거운 돌솥밥을 맨손으로 들다가 데기도 하고, 굵은 모래알이 든 신발을 신고 트래킹하다가 온통 물집이 잡힌다. 더욱 심각한 것은 팔을 비틀어도 아픈 줄 몰라 부러지거나, 맹장염에 걸려도 아픈 줄 모르고 있다가 치료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무통증이 치명적인 것은 아니지만 명대로 살기는 어렵다.
아프지 않은 세상이 파라다이스일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 아파야 한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기쁨, 슬픔, 아픔 들이 뒤섞여 오늘까지 왔다. 아픈 기억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프고 돌아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아픔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그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여 오늘까지 왔다. 생각을 조금 넓혀보자.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옥토는 사막이 될 것이고, 사람들은 목마를 것이다. 태풍이 불어 바닷물을 뒤집어놓지 않으면 바다에 사는 많은 생명이 사라져버릴 것이고 우리는 맛있는 횟감을 구할 길이 없고, 산모들은 미역국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한번 앓고 나면 철이 드는 모습을 본다.
우리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녀를 가진 부모가 되었고, 조부모가 되었다. 자녀들이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자녀가 아프면 부모들의 마음이 더 아파서 대신 아프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들이 공통적인 바람이다. 그러나 그들의 아픔을 대신 할 수 없는 것이 또한 만고불변인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다보니 지금의 젊은 부모들은 역경을 이길 줄 모르고 자녀를 키울 줄 모른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할머니 손에서 자라 할아버지 호주머니에 눈독을 들인다. 귀한 아이일수록 강하게 키워야 하고, 많은 시련을 겪을수록 강한 사람으로 성숙한다. 어두움을 알지 못하면 밝음을 감사할 줄 모르고. 아픔의 괴로움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건강의 감사함을 깨달을 재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