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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칼럼 2017-08-24T14:04:31+00:00

원장님 칼럼

개는 개라 하고

작성자
성로요양병원
작성일
2018-05-17 09:28
조회
14
개는 개라 하고...

滄 巖 김 석 대

집앞에 산책길이 있다. 그 길 입구에 “반려견과 산책하는 법”이라고 하여 몇가지 주의사항을 써놓은 조그만 팻말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집에서 기르는 짐승을 반려동물이라고 한다. “반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짝이 되는 친구”라고 되어있다. 한자로 “伴侶”라고 쓰는데 옥편을 찾아보니 두 글자 모두 “짝, 동무”라는 뜻이 있다. 특히 “伴”에는 “의지한다” “모신다”는 뜻도 있다. 짐승과 짝이나 동무가 되고싶은 사람, 짐승을 의지하려는 이, 짐승을 모시고 섬기려는 이들이 짐승을 반려로 삼겠다는데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그냥 스스로 “짐승같은” 혹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는 배우자를 반려자라고 한다. 그래서 짐승을 반려자로 삼겠다는 이를 보면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생긴다. 짐승의 배우자라는 얘긴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네발로 길지 두발로 걸을지, 말을 할지 멍멍 짖을지...?
호칭은 상대에게 적당해야 한다. 어린 길동이는 아비를 아비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이 가슴이 사무쳐서 가출했던 것이다. 학생이 선생을 “선생놈”이라고 부를 수 없듯, 선생이 학생들을 “학생님”이라고 불러서도 안된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한다하여 “도둑님” “간첩님”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허기사 요즘 젊은 엄마들 중엔 아들의 이름대신 “아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쉽게 만난다. 아들이 엄마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데 엄마라고해서 아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매우 민주적인 발상에서 생겨난 일인 듯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면 부모와 맞짱은 뜰지언정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착한 아이로 자랄 것 같진 않다.
도둑놈은 도둑놈이라 하고 갈보는 갈보라고 해야한다. 부끄러운 짓을 하는 사람은 부끄럽다는 것을 알려야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도둑놈”은 부끄럽지만 “절도범”은 법조계의 투사처럼 보이고, “갈보”나 “창녀”는 삼족의 삼대에 걸쳐 망신인데 “성매매여성”쯤 되면 가슴이 풍만하고 다리가 늘씬한 밤거리의 활력소이다. 그래서 절도범이나 성매매여성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부끄러운 짓을 주저하지 않는다. 양심이 퇴화된 것이다. 갈보짓은 꿈에라도 할 염두를 내지 못하는데 성매매는 열두번하고도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리며 시치미를 뗀다. 물론 도둑놈이나 갈보도 사람이므로 인권은 있다. 그에 알맞은 인권이 있으므로 그에게 알맞은 대접을 해줘야 한다. 간첩은 간첩으로 반역자는 반역자로 취급해야 애국하는 선량한 사람들이 편안하다. 변란을 꾀하는 반역자와 애국자에게 같은 집을 주고 같은 밥을 주는 것이 공평한 일인지는 몰라도 결코 공정한 일은 아니다.
“공평”과 “공정”은 다른데 이를 같은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과 열심히 노는 학생에게 공평하게 같은 점수를 준다면 공정한 일은 아니다. 노력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은 차별을 해야 진짜로 공정한 처사이다. 대학생 자녀와 초등학생 자녀는 똑같이 열심히 해도 용돈은 다르게 준다. 극장가고 생맥주마시고 화장하고 데이트하는 대학생과 구멍가게에서 뽑기와 오뎅이면 충분한 초등학생에게 똑같이 용돈을 준다면 공평할 수는 있지만 공정한 일은 아니다. 열심히 하면 많이 주기도 하지만 처지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야 공정하다. 짐승은 짐승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같은 동물이니 평등해야된다는 말은 억지다. 개는 개처럼 취급하고 사람은 사람처럼 대접해야한다. 애국자는 애국자이고 반역자는 반역자이다.